이번년도는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1년동안 활동한 멋쟁이 사자처럼 7기를 무사히 마치고, 8기 운영진을 선발했다. 그리고 운영진 교육을 진행하면서 취업 준비를 동시에 준비하였다. 실제로 산업체 복무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퇴사하고 군대에 오기까지 별에 별 일이 다 있었다. 2020년은 내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해이다. 이번 회고를 통해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개선하고자 한다.

멋쟁이 사자처럼

목표는 중요하다.

중학생 때부터 나는 줄곧 컴퓨터를 좋아했고,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IT 관련 지식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래 코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딩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첫째로 처음 접한 C언어가 너무 어려웠고 둘째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하게 없었기 때문이다.

운영진 활동을 하며 꿈을 찾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멋쟁이 사자처럼은 내게 있어서 단비같은 존재였다. 멋사는 대학교 1학년 때 사귄 친구의 권유로 알게 되었고, 덕분에 7기 운영진까지 지원하였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운영진을 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운영진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운영진이라는 역할을 해내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공부를 필요로 했는데, 이것이 나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멋사 7기 운영진으로의 활동은 2020년 초 수료하는 것으로 무사히 마무리를 지었다. 7기 운영을 하면서 해커톤에서 특별한 성적을 얻지는 못했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내겐 큰 의미였다. 수업 교안을 준비하면서 나는 백엔드 개발자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으며, 코딩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머의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아쉬운 점

나는 경험 상 프로그래밍은 이론이나 개념도 중요하지만 직접 만들어보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이 컸다. 그래서 수업 진행을 PPT위주가 아닌 실습 위주로 진행하였고, 필요한 개념은 Notion에 정리한 내용과 판서를 통해서 설명하였다. 당시 이러한 방식이 학습하는 데 효율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진행했는데,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업까지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수업 진행에 있어서 준비가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아리원들에게 미안하다.

군대 대신 취업을 결심하다.

계기

나는 군대를 가기 싫었다. 이제 막 백엔드 개발자라는 꿈을 설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잠시 내려두고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어려운 일이었다. 계속해서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그것을 위한 방법이 바로 산업체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산업체에 들어가면 경력 단절이 없음은 물론 3년의 복무 기간동안 군복무와는 비교도 안되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무조건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3학년 1학기를 휴학하였다. 멋쟁이 사자처럼 8기 운영진 교육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취준생이 되다.

몇 개월에 걸친 취업 준비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취업에 필요한 정보들은 보통 Awesome Alternative Military Service미필자 정보공유 카페에서 얻을 수 있었고, 입사 지원은 대개 로켓펀치산업지원 병역일터에서 이루어졌다. 이곳들에 올라오는 공고를 보고 여러 회사에 지원한 결과 한 회사에서 연락이 돌아왔고,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취업에 성공하다.

일주일 동안 해야하는 과제는 플라스크를 기반으로 하는 API 서버를 구축하고, postgresqlsqlalchemy, redis를 이용해서 데이터와 사용자 세션을 관리하는 간단한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해당 기간동안 나는 과제를 하는 데에만 집중한 채 다른 것은 미루어 두었다. 요구사항에 기재된 기술 스택들이 내게는 생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Docker 컨테이너 상에 웹서버, WAS서버, DB서버마저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당장 구축해야하는 도커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나머지 기술들도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을 오로지 투자하여 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개발에 전념했다. 그 결과 모든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API서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짧은 입사 테스트 기간동안 배운 것들이 너무나 값지다 생각했기에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없었다. 게다가 이후 면접에서 많은 질문에 대답을 잘 못했기 때문에 분명 떨어질거라 생각하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나는 입사 테스트에 합격해 있었다.

합격 이메일이 스팸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라 하마터면 자동으로 탈락될 뻔 했다.

회사 생활에서 얻은 것들

회사는 강남에 위치한 공유 오피스에 있었다. 학교가 아닌 회사로 출퇴근하는 풍경은 새로웠고 설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맥북 15인치과 델 모니터 하나를 제공해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일을 하지는 않았고 약 10일 동안 부여된 적응기간이 내게 주어졌다. 이 기간 동안 깃랩에 있는 서버 소스코드를 개발 서버에서 구동해보는 과제를 수행하며 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높여 갔다.

이후에는 테스트코드를 작성하는 작업을 하였고, 이슈에 등록되어 있는 버그를 조치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한 작업인 슬랙봇 기능개선이다. 서비스 기능 중에 채팅이 있었는데 해당 기능은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위한 것이다. 사용자는 채팅을 시작(open)한 이후 더 이상 질문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 채팅을 닫고(close) 그만두게 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깃헙에 이슈를 생성하고 그 아래에서 댓글을 이어나가는 것과 유사하다.

회사에서는 이러한 사용자들의 채팅(문의사항)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슬랙봇으로 슬랙 채팅방에 동일한 메시지를 전송하게 하였다. 하지만 해당 기능은 사용자가 보내는 메시지를 하나씩 슬랙에 출력하는 바람에 내용을 한 눈에 파악하기 힘들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문의에 해당하는 채팅이 여러 개로 분리된 모습은 그리 가독성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동일한 문의에 대한 메시지들은 하나로 합쳐서 보여주는 기능을 만들자는 깃허브 이슈가 올라와 있었고, 나는 이것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Slack API를 찾아보니 메시지를 merge하는 기능은 없었다. 대신에 chat.updatesearch.messages를 이용해서 새로운 메시지가 이미 존재하는 문의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합쳐서 보여주고,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였다.

결국 퇴사하다.

회사를 다닌지 한달이 될 무렵, 사수분이 나와 직장 동료를 조용히 불렀다. 우리들처럼 회사에는 산업요원으로 복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 중 한두명을 선발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회사를 더 다니고 싶다면 다녀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사를 나가도 좋다고 하였다.

내가 회사에 입사하게 된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군복무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기에 이러한 제안은 내게 결과적으로 회사를 나가달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나는 결국 짤린.. 아니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회사를 나와야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부족한 기여도
  • 시간 약속 지키기
  • 열정(?)

기억이 정확하게 다 나지는 않지만 사수가 말하길 스타트업에서는 신입이더라도 충분히 성장하기를 기다려줄 여유는 없고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어떠한 업무를 실행할 때 기간을 설정하고 지키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부분으로 자주 지적받았다. 또한 성과를 못내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서 일하는 열정이라도 보여주어야 했다는 말도 들었다.

이러한 사수분의 말들은 결국 내게 따끔한 일침으로 돌아왔고, 진심으로 내가 부족한 부분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 회사에 입사할 때는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일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한 몫을 다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당시 회사에서 나오면서 인생의 쓴 맛을 맛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일에 입금된 첫 월급은 무척 달았다.

이번년도의 끝은 군복무

다시 회사에 지원했으나

결국에 회사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회사를 찾거나 군대를 가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회사에 지원했지만 가고 싶은 회사에 붙지는 못했다. 한 회사에서는 내가 맘에 들었는지 다음년도(2021년)에 나오는 TO를 줄테니 회사에 다니면서 기다려보라고 이야기했다. 심지어는 취준을 병행해도 된다는 파격 조건을 내걸었으나 내가 싫다고 하고 기회를 걷어찼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회사는 면접을 가면 붙을 거 같기는 했는데 내 커리어에 도움될 것 같지는 않은 회사라서 가지 않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정보보호병 지원

나는 앞서 말했다싶이 군대를 가기 싫어하던 이유가 경력단절에 있다. 이제 꿈을 찾아서 앞으로 나가가려는 나에게 있어서 군대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부모님이 아무리 남자는 군대를 가야한다는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산업체에서 일할 수 있는게 아닌 만큼 끝없이 휴학하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군대를 선택하게 되었고, 정보보호병이라는 그래도 전공과 연관이 있는 보직에 지원하게 되었다. 게다가 사단보다는 군단 이상 급으로 자대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자대배치, 절망

정보보호병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드는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28사단에 배정받게 되었다. 후반기 때 친구들이 다 지작사나 군단을 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배가 아프다. 후반기 마지막 주차 때는 거의 정신 나간 채로 살았던 거 같다. 왜 내가 무엇때문에 사단으로 배정이 난 것일까 계속 생각했다. 그 결과 결국 깨달았다. 도박은 하지 말자.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것이지 군대처럼 내가 어디갈지 모르는 것에 몸을 맡기니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군대에 지원한 결정 자체는 내가 내린 것이기에…

앞으로의 목표

군대에 온 이상 일정 시간이 지나가기 이전에는 절대로 나갈 수 없다. 그것이 군대의 룰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계획을 세우고 이것을 실행하는 것으로 후회없는 군생활을 보내고 싶다. 아래는 그것을 위한 개략적인 목표이다.

  • 꾸준한 블로그 활동
  • 코딩 테스트 준비
    • 백준 문제 등 활용
  •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공부하기
    • GoF 디자인 패턴
    • Java 객체지향 디자인 패턴
    • 클린 아키텍처
  • 애자일 공부하기
    • 리팩토링
    • 클린 코드
  • 부족한 자바 공부
    • 이펙티브 자바
  • 이외에 60권 독서
  • 100일 동안 다이어트 및 운동

군대라는 공간 특성상 코딩을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고, 나는 전역 이후의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개발자가 되어있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개발자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들을 군대 내에서 최대한 많이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람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을 영위해야 행복함을 느낀다라고 생각하는 나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나는 군대에 온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특히 자대배치 이후에 말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언제 또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학교나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을 공부를 지금하는 거라 생각하면 좋은 기회이다. 나는 절대로 1년 남은 시간을 가벼이 버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내가 결정한 선택의 책임에 있어서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다.